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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부

한국사 인물- 이순신장군의 업적, 국내 관광지 소개, 성격이 유사 세계사 인물 3인

by 포도알고르기 2024. 7. 1.

서울 광화문 앞 이순신 장군 동상 출처: Pixabay-Zhu Bing

오늘은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오늘은 중고등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서 포스팅을 해 보겠습니다. 또한 임진왜란의 이순신 장군 처럼 수적으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용기로 군대를 승리로 이끈 세계사 인물 3인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소개

한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충무공 이순신 [李舜臣, 1545년(인종 1)~1598년(선조 31)] 은 16세기 말 '임진왜란' 의 혼란 속에서 그는 탁월한 리더십과 용맹함으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의 전략적 탁월함과 조국에 대한 변함없는 충실함은 후손들에게 민족주의의 정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이순신 장군의 업적에 대해 공부하게 하는것은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이 블로그 게시물의 목표는 이순신 장군의 중요한 업적을 분석하고 우리가 어떻게 그의 유산을 현대시대에 인식하고 지속할 수 있는지 탐구하는 것입니다.

업적

서울 광화문 앞 이순신 장군 동상 출처: Pixabay-Zhu Bing

1545년 4월 28일 한성(지금의 서울)에서 태어난 이순신은 한국 역사의 격동기에 성장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뛰어난 총명함과 강한 사명감을 보였습니다. 이순신은 1576년 무과 시험에 합격하며 뛰어난 경력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육지에서 근무하며 뛰어난 리더십과 정치력을 발휘하여 동료들 사이에서 존경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1591년 이순신은 전라좌수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직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치하의 일본이 조선 진출을 준비하면서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이순신은 조선 수군 강화에 주력했고, 그 중에서도 유명한 거북선(거북선)을 개발하는 등 비군인인 자신의 수군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거북선의 혁신적인 디자인은 적의 포격을 막기 위해 덮개를 씌운 선데크와 승선 시도를 막기 위해 돌출된 돌기가 특징입니다. 이순신의 비군사적 능력에 대한 첫 번째 중요한 시험은 1592년 옥포해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순신은 소규모의 전선을 이끌고 일본 함대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 수많은 적선을 격파하고 조선의 사기를 높였습니다. 이 전승은 이순신을 탁월한 전략가로서의 명성을 굳건히 하는 비군사적 승리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순신의 가장 유명한 업적 중 하나는 1592년 한산도 전투입니다. 이순신은 '학파' 전법을 사용하여 왜군을 함정에 빠뜨려 엄청난 손실을 입혔습니다. 이 전투는 일본군의 전선을 붕괴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의 혁신적인 전술과 비군사적 전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었습니다. 한산도 전투의 성공은 다른 주요 비군사적 전투와 자주 비교되며 그 전략적 탁월함을 인정받습니다.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이자 가장 극적인 전투는 1598년 12월 노량해전이었습니다. 이순신은 수적으로 크게 열세인 상황에서도 조선과 중국 연합군을 이끌고 후퇴하는 왜군에 맞서 큰 승리를 거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순신은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지만, 그의 리더십은 결정적인 손바닥을 날려 일본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종식시켰습니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당면한 임무를 강조했습니다.

이순신의 리더십

그의 정치적, 기술적 업적 외에도 리더십과 청렴성은 그를 모범적인 인물로 돋보이게 했습니다. 그의 생 절반에 걸쳐 이순신은 조국과 군사들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부당한 투옥과 왕실의 지원이 부족한것 등 수많은 개인적, 직업적 어려움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의무를 다했습니다.그의 유명한 명언인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는 그의 당당하고 이타적인 리더십의 방식을 보여주는 말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스타일은 진실성, 융통성, 충실함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윤리적 리더십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이순신 장군의 삶은 야심찬 지도자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한국 관광지 소개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의 업적을 기리고,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장소들입니다.

여수에 위치한 이순신 순국공원은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입니다. 공원 내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함께 그가 사용했던 거북선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노량해전의 주요 전투 장면을 재현한 전시관이 있어 방문객들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광장은 이순신 장군이 작전 계획을 세우고 군령을 내린 진남관 등 주변 유적지와 연계한 역사 문화 관광벨트의 시발점으로, 매년 5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국문화축제인 거북선 축제가 열린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구조물은 원형에 가깝게 재현한 거북선이다. 단순히 외형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고 내부에서도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거북선 내부로 들어가면 수군들의 역동적인 모습과 임진왜란 당시의 생생한 장면을 느낄 수 있으며 간단한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왜란에서 활약한 거북선은 세 척으로 전라좌수영, 방답진, 순천부 선소에서 한 척씩 건조했으며, 거북선이 있는 위치는 바로 전라좌수영 선소가 있던 곳이다. 이순신 광장의 한쪽 편에는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와 임진왜란의 과정 등을 담은 벽화가 있다.임진왜란 당시 우수영이 있었던 해남은 임진왜란 최대의 전과를 올린 명량대첩이 벌어졌던 곳으로, 명량해협은 승전을 기념하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전라 우수영 명량대첩공원 안에는 이민서가 짓고 김만중이 쓴 명량대첩탑이 서 있는데 충무공이 바다의 급류를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친 상황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사실 명량대첩 승리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울돌목의 빠른 물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에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좁은 길목을 틀어막는 다면 이곳보다 더 좁은 곳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최소 300m 의 넓은 폭을 가진 울돌목을 전장으로 택한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세다는 울돌목의 물살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해남 우수영관광지에는 '울돌목 스카이워크' 라는 시설이 만들어져있습니다. 울돌목의 물살을 가까이에서 볼수 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홍수 때 빠르게 흐르는 한강 물살을 보는 듯 합니다. 최대 초속 6m이니 아차 하는 동안 저 멀리 떠내려갈 정도의 빠르기 입니다. 명량대첩의 진짜 영웅은 당시 노를 저었던 격군이었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닐 정도입니다. 당시 우리 격군들은 두시간 넘게 이 엄청난 물살을 노 저으며 버텼습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제자리 지키기' 부터 사투였던 것입니다. 이 빠른 물살이 무언가 장애물을 만나면 마치 회오리 같은 움직임을 보입니다. 그래서 영화 '명량' 의 부제가 '회오리 바다' 였습니다. 이순신이 지휘하던 조선군은 이 회오리 포인트를 정확하게 읽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 제자리를 지키며 항전했을 것이고, 왜군은 아무것도 모르고 돌진하다가 이 회오리 바다에서 중심을 읽고 허우적 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충사

현충사 출처:국가유산청현충사관리소

1706년(숙종 32년) 충청도 유생들이 숙종 임금께 상소하여 조정에서 이를 허락해 사당을 건립하였으며 1707년 숙종임금께서 현충사(顯忠祠)란 액자를 하사하였다. 1868년(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현충사는 철폐되었으며, 1906년 을사늑약에 분노한 유림들이 현충사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일제치하에서 이충무공 묘소가 경매로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지경에 처하자 우리 민족 지사들이 ‘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조직하고 동아일보사의 협력으로 민족성금을 모아 1932년 현충사를 중건하였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1967년 본래의 1932년에 중건한 옛 사당 위편에 새로운 현충사를 준공하였고 이순신 장군 탄신일인 4월 28일을 기념하여 매년 정부주관으로 제전을 올리고 있다.

2011년 전시관과 교육관을 갖춘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전시관에는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에 관한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교육관에서는 이순신 장군 정신과 위업선양을 위한 강의와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이순신 장군과 유사한 역사적 인물

1. Hannibal Barca (한니발 바르카)

배경: 한니발 바르카는 기원전 3세기에 카르타고 출신의 군 지휘관 입니다. 그는 로마 공화국과의 제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뛰어난 전략 및 천재적인 전술로 유명합니다.기원전 216년, 한니발은 칸나에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약 50,000명의 군대를 이끌었고 약 80,000명의 훨씬 더 큰 로마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한니발은 독특한 이중 포위 전술을 구사하여 로마군을 포위하고 전멸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전투는 군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간주됩니다.

2. George Washington (조지 워싱턴)

배경 : 조지워싱턴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대륙군의 지휘관이었고, 나중에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영국에 맞서 엄청난 역경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델라웨어 강 건너기 : 1776년 크리스마스 밤, 워싱턴은 트렌턴 전투에서 헤센 용병들을 기습 공격하기 위해 얼음으로 가득찬 차가운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진취적인 작전을 펼쳤습니다. 이 승리는 군대의 사기를 크게 높였고, 전쟁에서 워싱턴의 전략적 대담함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Erwin Rommel (에르빈 롬멜)

배경: "사막의 여우"로 알려진 에르빈 롬멜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군사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북아프리카 캠페인에서의 리더십과 기동전에서의 전문성으로 유명했습니다.가잘라 전투: 1942년 롬멜은 수적으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가잘라 전투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작전과 전략적 속임수를 통해 연합군을 통솔하기에 적합했습니다. 그의 리더십과 전략적 재치는 전쟁에서 가장 유능한 지휘관 중 한 명의 인격을 갖게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은 압도적인 역경 속에서도 탁월한 리더십과 전략적 사고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업적은 상상력, 결단력, 뛰어난 전술적 능력으로 가장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결론

'임진왜란' 당시에 그의 업적은 역사에 잊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고 후세에 풍부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이러한 교훈을 전달하여 그들이 비판적 사고, 창의성, 그리고 강한 도덕적 성품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순신의 유산을 제대로 알고 승계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을 발전 시켜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문제 해결과 비판적인 분석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면 그들이 현대 사회의 복잡함을 헤쳐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은 우리 교육에 적용함으로써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살아서 또 새로운 세대가 그 위대함을 달성하고 사회에 긍정적으로 이바지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가르칠 수 있겠습니다.